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상하이 전투 (문단 편집) ==== 중화민국의 전쟁계획 ==== 1935년 3월 중국에 부임했던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 단장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은 그해 8월 20일 장제스에게 '현 시국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이란 것을 제출하였다. 팔켄하우젠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현재의 전략적 상황은 일단 군사상의 충돌이 발생하게 되면 화북은 즉각적인 위험에 처한다. 만약 싸우지 않고 화북을 포기한다면, 적은 장강 북안까지 신속히 횡단하게 되어 중요한 농해 철도 및 주요 도시 등을 시작으로 곧바로 최전방의 전구가 적의 수중에 떨어질 것이다. 황하 방면의 방어선에 대해서는 적이 산동 방면으로 도하하여 공격 기세를 취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 해상 방면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가 있는 곳은 장강이다. 적이 만약 중국의 제일 중요한 중심점을 제압하고 곧바로 우한 일대에 이르게 된다면, 중국 국방력은 이미 제일 중요한 근거지를 상실한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일본군은) 곧바로 내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중국은 양분될 것이다. >---- >현 시국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 팔켄하우젠은 시국에 대해 냉정히 분석하여 일본과 직접 현대전을 벌여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고 외국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도 어려우며 외국의 원조는 중국이 전 역량을 다해 전면적인 저항을 하여 국토를 보존한 상태에서나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고 국토 보존을 위한 전면저항을 위해서는 내륙 지역에 방어선을 구축하는 내선전략을 통해 지구전, 지연전을 펼쳐야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팔켄하우젠의 조언을 바탕으로 중화민국 국민정부는 1936년 민국 25년도 국방계획 초안을 작성, 다음해인 1937년 1월에는 더욱 자세한 민국 26년도 작전계획을 작성했다. 중국군 참모본부는 일본의 작전 의도를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일본군은 베이핑-톈진을 점령한 이후, 평한-진포 두 철도를 따라 정저우-지난-쉬저우로 진출하여 중국군의 주력을 격멸하려 하거나, 서북방향으로 중국군을 압박하여 봉쇄하려 할 것이다. 조공작전으로는 장가구-쑤이위안-하투-대동 및 베이핑을 경유, 바오딩, 스좌장을 지나 타이위안으로 진격하여 산서를 포위할 것이다. 또한 일본군은 절대적 해상권을 이용하여 교주만-해주 등에 상륙하여 황하 북안에 작전 중인 중국군을 측면에서 위협할 것이다. 이러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일본은 중국에서 17개 상비사단과 17개 예비사단을 포함, 총 34개 사단을 축차적으로 투입할 것이며, 병력은 대략 60만 명을 사용할 것이다. 일본은 해상통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중국 연안에 배치된 제3함대를 제외하고는 본토의 주력함대를 즉각 중국전장으로 투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군은 약 3000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동아시아에서 소련, 미국, 영국 등 서구세력의 공군력 때문에 중국전장에 투입하지 못하고 자위를 위해 예비대로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주력 폭격기들은 중국의 중요도시와 중국 공군기지 및 주요 교통선과 철도를 폭격하여 육군 작전과 협조할 것이다. >---- >민국 26년 작전계획 중일전쟁의 초기전개는 중화민국 참모본부의 예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중화민국은 일본의 침략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일본이 중국만을 침략한 갑안과 일본이 세계대전을 일으킨 을안을 입안했는데 갑안에서 중국군의 단계적인 퇴각을, 을안은 일본군 저지 이후의 만주 진공을 상정한 것이었다. 이 계획을 통해 중국은 일본이 침략할 경우 즉각 상하이의 일본군 주둔군을 섬멸하기로 계획한 바가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